5‧18민중항쟁 44주년을 맞아 장성에서는 뜻깊은 행사가 열렸다. 1980년 5월 27일 새벽, 도청에서 산화한 김동수 열사 추모문화제가 5월 26일 열사의 생가인 장성군 서삼면 임곡마을에서 열렸다.
조선대 전자공학과 78학번 김동수 열사
조선대 동문인 김동수 열사는 1978년 전자공학과에 입학하여,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전남지부장을 맡아 불교운동에 헌신하였으며, 조선대 학원자율화추진위원회 및 민주투쟁위원회에서 활동했다.
5‧18민중항쟁 당시 예비검속자라고 판단하고 목포로 피신했다가, 21일 부처님 오신 날에 계엄군의 무차별 총격이 있었다는 소식을 듣고 광주로 돌아왔다. 이후 전남도청 항쟁본부 학생수습대책위원으로 활동하다 5월 27일 새벽, 계엄군에 맞서 마지막까지 전남도청을 지키다 산화하였으며, 현재 국립5·18민주묘지(묘지번호 2-27)에 안장되어 있다. 조선대는 1989년 2월에 명예 공학사 학위를 수여했으며, 1992년 조선대 민주공원 내에 추모비를 건립했다.
44년 만에 장성 김동수 열사 생가에서 진행
이번 추모문화제는 44년만에 처음으로 김동수 열사의 고향 마을에서 열렸다. 열사의 삶이 시작되었고,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열사를 친구로, 선후배로, 예의 바른 청년으로 지켜봐 온 마을에서 추모문화제를 열게 되어 더욱 뜻깊었다. 열사의 어머니 김병순 여사는 지금도 생가에 살고 계신다.
지역사회와 김동수 기념관을 건립하기 위한 첫발
장성군과 지역사회는 김동수 열사의 삶을 기리고자 열사의 고향에 김동수기념관을 건립하기로 힘을 모았다. 추모문화제는 마을 이장님의 인사와 유족에 대한 눈물을 담은 위로의 말로 서막을 열었다. 열사의 동료들은 장남을 잃은 어머님 김병순 여사님께 아들 노릇을 하겠다며 큰절을 올렸다. 이어 열사의 후배인 조선대 안형준 총학생회장과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주현우 회장이 열사의 짧은 삶을 소개했다.
다음으로 열사의 한을 풀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씻김굿을 진행했다. 김동수 열사의 넋을 불러 위로하고 반야용선에 태워 극락으로 보내려 할 때 열사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던 마을 어르신들이 앞다투어 노잣돈을 보탰다. 김춘성 조선대 총장은 “학생들이 열사의 헌신적 삶을 본받고, 열사의 정신이 후대에 이어져 더욱 아름답고 조화로운 사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김동수 열사의 오월 정신이 조선대의 민주정신으로 영원히 이어지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김동수기념사업회는 이번 추모문화제를 통해 김동수열사의 생애를 모든 이들과 나눌 수 있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될 것으로 예상하며, 앞으로도 5‧18민중항쟁과 열사의 정신 계승을 위해 노력해 나가기로 했다.